AI 뒤에 숨은 실적주의, 대학 교육 본질 말살하나

 이공계 대학원 교수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연구비 확보를 위해 분투하는 중소기업 사장에 비유하는 자조 섞인 농담이 유행한 지 오래다. 연구와 학생 지도라는 본업보다 정부 과제를 따내기 위해 외부로 뛰어다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학원생 급여 상한선까지 인상되면서, 수십 명의 제자를 거느린 교수보다 차라리 자기 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의 처지가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한 부담은 결국 교수들이 학생 지도가 필요 없는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체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인공지능(AI)은 대학의 교육 기피 현상에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들에게 AI는 기초부터 가르쳐야 하고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 인간 대학원생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대체재로 인식된다. 연구 과정의 상당 부분이 반복적인 단순 작업임을 고려할 때, AI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연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구다. 결과적으로 학생 없는 연구실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학술 지형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를 맞이한 대학의 이러한 변화 이면에는 위험한 의도가 숨어 있다. 대학의 본질적인 교육 기능을 외면한 채 단순한 실적 생산 기지로 남으려는 욕망을 AI라는 기술적 필연성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논문을 조립하는 컨베이어 벨트로 변질되는 것은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번거로움을 털어내고 성과만 챙기려는 인간의 욕구를 AI라는 방패로 정당화한 결과에 가깝다. 시대적 흐름이라는 핑계는 교육 방치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있다.

 

본래 대학과 대학원은 지식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전수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된 일부 연구자들은 교육에 들어가는 노력을 불필요한 비용으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AI는 "시대가 변해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제공하며 지금까지의 교육 소외 행태를 합리화하는 수단이 된다. 심지어 이러한 변화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를 시대에 뒤처진 낙오자로 몰아세우며 대학의 공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대학원에서의 교육은 그동안 연구 과제 수행 과정에서 얻어지는 일종의 '부산물'처럼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체계적인 커리큘럼보다는 노동 현장에서 부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환경이었기에, AI의 등장은 그나마 유지되던 도제식 교육마저 끊어놓고 있다. 학생들은 연구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보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처럼 협소한 영역의 작업만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학생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기회는 사라지고, 대학은 오로지 우수 학술지 게재라는 수치에만 집착하게 된다.

 

결국 AI로 인한 대학의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선택 문제로 귀결된다. 대학에서 교육을 삭제하고 싶은 이들이 AI라는 도구를 앞세워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하고 있는 셈이다. 고등교육기관이 사회적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는 실적 지상주의에 저항하고 배움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연구 성과가 곧 교육의 질이라는 안일한 가정을 버리고, 학생이 연구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재구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문화포털

신문 TV 편성표, 60년 만에 퇴장

 종이신문의 한 구석을 수십 년간 굳건히 지켜온 TV 편성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주요 일간지들은 최근 디지털 미디어 소비 급증에 발맞춰 편성표 게재를 중단하고, 그 자리를 심층 뉴스나 지역 사회 콘텐츠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는 단순히 지면 구성의 변화를 넘어, 실시간 본방 사수라는 시청 문화가 완전히 저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OTT를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거실 TV를 통해서도 실시간 방송이 아닌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젊은 층은 물론이고 이제는 중장년층까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TV 앞에 모여 앉던 '모래시계' 시절의 풍경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 된 셈이다.과거 TV 편성표는 신문사에서 가장 열독률이 높은 '킬러 콘텐츠' 중 하나였다. 방송사들은 자사 프로그램을 하이라이트 칸에 올리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을 벌였고, 편성표에 오타라도 나는 날에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로 신문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과 숏폼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종이신문에서 편성표를 확인해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사라지면서 그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그동안 신문사들은 편성표 폐지를 시도할 때마다 고령층 독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부활과 폐지를 반복해왔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게 신문 편성표는 유일한 시청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대다수 언론사는 지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편성표 삭제라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전문가들은 플랫폼은 변해도 콘텐츠의 생명력은 여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TV 방송 기반의 영상들이 유튜브 숏츠나 릴스로 재가공되어 소비되고, 거꾸로 온라인 인기 스타가 지상파로 유입되는 등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 지면에서 편성표가 사라지는 것은 미디어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패턴에 최적화된 형태로 정보가 재배치되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주요 일간지들은 이번 지면 개편을 통해 확보한 공간을 인공지능(AI) 시대의 사회적 쟁점이나 지역 밀착형 보도에 할당하며 종이신문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찾고 있다. 독자들은 이제 신문에서 오늘 밤 방송 시간을 확인하는 대신, 복잡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긴 호흡의 기사를 읽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을 이어온 TV 편성표와의 작별은 2026년 대한민국 미디어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