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다카이치 회담날 푸틴은 방중…동북아 뒤흔드는 '운명의 19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이 마무리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 앉는다. 중국 외교부는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아 오는 19일부터 이틀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이루어지는 전격적인 행보로, 올해 푸틴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측은 이번 만남이 양국 우호협력 조약 체결 25주년을 기념하는 정례적인 성격이라고 설명했으나, 외교가에서는 최근 긴밀해진 미·중 관계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지난 14일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고 러시아의 입지를 재확인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무역 현안과 대만 문제 등을 논의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자, 러시아 내부에서는 중·러 밀착 관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중국 측으로부터 미·중 간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를 직접 청취할 계획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의존도가 심화된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4년간 러시아는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 속에서 중국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아왔다.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동시에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 활용 가능한 물자를 공급하며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러시아 수입액의 3분의 1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할 정도로 대중 의존도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으나, 중국의 전체 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경우,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고립될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푸틴 대통령까지 연달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며 자국의 외교적 위상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중국이 안정적인 중재자이자 확실성의 원천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중동 분쟁 등 글로벌 위기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와 대비되는 책임감 있는 초강대국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번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이 글로벌 패권 경쟁의 중심축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동북아시아의 외교 시계는 한반도에서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러 정상이 만나는 같은 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일정은 지난 1월 이 대통령의 일본 나라현 방문에 대한 답방 차원으로, 양국 정상은 경제 협력과 국민 보호 등 민생 현안뿐만 아니라 중동 정세를 포함한 글로벌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동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회동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베이징과 안동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번 정상 외교는 2026년 상반기 국제 정세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관계의 유화 국면 속에서 중·러 관계의 결속력을 시험하게 될 베이징 회담과, 셔틀 외교의 정착을 보여주는 안동 회담은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이번 연쇄 회동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급변하는 지역 정세 속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문화포털

칸 유일 경쟁작 '호프'…나홍진이 그린 희망들의 충돌

 제7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 영화 '호프'가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일을 벗었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2,3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나홍진 감독은 상영 다음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의외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전날의 화려한 상영을 두고 "테크니컬 리허설"이었다는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시사했다. 취재진에게 편집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거장다운 겸손함과 동시에 끝없는 예술적 집착이 묻어났다.실제로 영화 '호프'는 칸 공개 직전까지도 치열한 후반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나 감독은 상영 불과 나흘 전까지 수정을 거듭했으며, 인터뷰 당일에도 시각과 청각 모든 기술 파트가 전쟁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영화를 두고 "여전히 진화 중인 생명체와 같다"고 정의하며, 칸에서의 첫 상영이 마침표가 아닌 더 완벽한 결과물을 향한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행보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난 그의 예술 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작품의 탄생 배경에는 감독이 전 세계적으로 느끼고 있던 막연한 위기감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홍진 감독은 현대 사회를 뒤덮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전쟁의 전조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온 세상이 부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임박해 있는 거대한 위협을 영화적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양식과 심리 묘사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영화의 중심을 이끄는 주인공 범석은 기존 영웅 서사의 인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흔들리고 도망치고 싶어 하며, 확신 없는 걸음을 내딛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로 묘사된다. 나 감독은 범석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다. 용기와 비겁함, 영악함과 투박함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면모가 투영되었을 때 비로소 실제 인간다운 캐릭터가 완성된다는 철학이다. 관객들은 범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다.제목인 '호프'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도 흥미롭다.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 '희망들의 충돌'에 관한 기록이라고 정의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악의 없이 자신의 희망을 쫓지만, 그 선한 의지들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파열음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누구도 악인이 아니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비극은 인간관계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든다.'곡성' 이후 10년 만에 칸 경쟁 부문에 복귀한 나홍진 감독은 이번 초청에 대해 깊은 영광과 떨림을 감추지 않았다. '추격자'를 시작으로 '황해', '곡성'에 이어 네 번째로 칸의 부름을 받은 그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칸 월드 프리미어의 중압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세계 영화계의 정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위치를 증명한 나홍진의 '호프'는 칸에서의 열기를 뒤로하고 이제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