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햄' 결국 방 뺐다... 백종원 신화에 첫 오점

 외식업계의 대표주자 더본코리아가 자사 프리미엄 통조림 햄 브랜드 '빽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온라인몰에서 해당 제품의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이는 설 명절 선물세트 할인 판매를 둘러싼 가격 논란과 품질 논쟁이 겹치면서 벌어진 결과다.

 

더본코리아는 설 명절을 앞두고 '빽햄 선물세트'를 자사 쇼핑몰 '더본몰'에서 정가 5만1900원에서 45% 할인된 2만8500원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정가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사 제품들과의 가격 비교를 통해 '거품 논란'이 불거졌다.

 

품질 논란도 불거졌다. 소비자들은 빽햄의 돼지고기 함량이 85.4%로, 업계 1위 제품인 스팸(91.3%)보다 낮음에도 오히려 가격이 더 비싸다는 점을 지적했다. 프리미엄 제품을 표방하면서도 실제 품질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후발 주자로서 생산 규모가 작다 보니 불가피하게 생산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45% 할인 판매 시에도 세트당 1500원의 마진이 발생하지만, 실제 운영비를 포함하면 사실상 이익이 없는 상황"이라며 가격 책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백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더본코리아는 자사 쇼핑몰에서 빽햄 선물세트를 판매 목록에서 삭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쿠팡, SSG닷컴 등 외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여전히 해당 제품의 판매가 계속되고 있다.

 

더본코리아 측은 이번 판매 중단이 일시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품절 상황이 지속되어 소비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일시적으로 상품 리스트에서 제외했다"며, "품질 논란으로 인한 생산 및 판매 중단은 아니며, 조만간 재판매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외식업계의 성공 신화를 쓴 백종원 대표가 식품 제조업에 진출하면서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와 SNS를 통한 빠른 정보 확산이 기업의 가격 정책과 품질 관리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분석이다.

 

문화포털

지금은 대박, 초연은 쪽박…'호두까기인형'의 충격적인 흑역사

 매년 12월이면 전 세계 공연장을 어김없이 점령하는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차이콥스키의 환상적인 음악과 함께 소녀 클라라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꿈속 과자 나라를 여행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수십 년간 관객들을 매료시켜왔다. 하지만 지금의 찬란한 명성과는 달리,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호두까기인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당시 비평가들은 "예술적으로 전혀 기대할 것이 없는 작품", "발레라는 장르를 한 단계 후퇴시켰다"는 등 혹평을 쏟아내며 이 작품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초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것은 바로 무대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었다. 주인공 클라라와 프리츠 남매는 물론, 파티에 온 친구들, 장난감 병정과 쥐, 눈송이 등 수십 명에 달하는 역할에 황실발레학교 학생들이 대거 투입됐다. 이전에도 발레 공연에 어린이가 잠시 등장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처럼 작품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것은 '호두까기인형'이 처음이었다. 비평가들은 "아이들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통에 어른 무용수들의 춤까지 방해했다", "무대가 너무 어수선해서 참을 수 없었다"는 신랄한 리뷰를 남겼다. 결국 '호두까기인형'은 초연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자취를 감췄고, 이후 1919년과 1934년 러시아에서 재안무될 때는 아이들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성인 무용수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이루어졌다.러시아에서 외면받았던 '호두까기인형'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실패의 원인이었던 '아이들'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 미국에서였다. 1954년, 러시아 출신의 천재 안무가 조지 발란신은 뉴욕시티발레단과 함께 자신만의 '호두까기인형'을 선보였다. 그는 러시아에서의 수정 방향과 정반대로, 아메리칸 발레학교 학생 125명을 더블 캐스트로 무대에 세우는 파격적인 역발상을 감행했다.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노는 이 가족 친화적인 공연은 가족 가치를 중시하던 당시 미국 중산층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뉴욕의 연례 크리스마스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발란신 버전의 성공은 '호두까기인형'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1958년 미국 대형 방송사 CBS가 크리스마스에 공연 실황을 전국에 방영하면서부터다. 안방극장을 통해 퍼져나간 '호두까기인형'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벗고 연말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미국의 수많은 발레단은 '호두까기인형'을 발레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첫 무대 경험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주요 발레단 공연에 수십 명의 아역 무용수들이 출연하며 '호두까기인형'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