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미국이냐?' 한국인 73%가 거부하는 팁 문화, 왜 자꾸 밀어붙이나

 최근 서울 일부 식당에서 소비자에게 팁을 요구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팁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여의도의 한 식당은 계산대에 'TIPBOX'라는 상자를 비치하고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항상 최고의 서비스와 요리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이를 목격한 소비자는 "여기 한국이다. 팁 문화 들여오지 마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사례로, 서울의 한 냉면집 키오스크 주문 화면에는 '고생하는 직원 회식비'라는 300원짜리 선택 옵션이 표시돼 있어 논란이 됐다. 이를 공유한 소비자는 "아무리 선택 옵션이라고 하지만 팁 문화 가져오려는 거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메뉴판에는 부가세와 봉사료가 모두 포함된 최종 가격을 표시해야 하며, 별도 봉사료를 강제로 요구하면 불법이다. 그러나 자율적 선택이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팁박스를 눈에 띄게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은 소비자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충분히 부담스럽고 강요로 느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식당이나 카페뿐 아니라 2023년에는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호출 후 별점 5점을 준 경우 '감사 팁' 기능을 제공해 논란이 일었다. 회사 측은 "승객의 자율적 선택"이라고 해명했으나 소비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팁 문화는 중세시대 영국 귀족들의 과시욕에서 시작돼 미국 등 북미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에서는 '팁 크레딧' 제도를 통해 최저임금 일부를 손님이 주는 팁으로 대체할 수 있어, 근로자의 부족한 인건비를 소비자가 보충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다만 미국에서도 최근 과도한 팁 요구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팁 문화 반감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2023년 SK커뮤니케이션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한국 사회에 팁 문화가 도입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한승훈 인하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한국은 나보다 우리,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중요시한다"며 "개인이 팁을 주고 싶어도 그 행위가 집단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팁을 주는 행위가 과시욕처럼 비칠 수 있다"며 "중국인들은 팁을 주면 오히려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일본 역시 팁에 거부감이 강한 나라로, 똑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은 오랜 기간 팁보다는 더 얹어주는 '덤' 문화에 익숙했다"며 "오히려 돈을 더 내라고 하니 액수 자체보다 감정적 거부 반응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는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음식값이 많이 오른 점도 팁 문화에 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문화포털

넷플릭스 덕분에 '갓'생 역전! 검은 모자의 글로벌 신분 상승기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작중 등장하는 '검은 모자', 즉 우리의 전통 갓(흑립)이 해외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갓끈 볼펜' 굿즈가 품절되는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다. 과연 우리는 이토록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갓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민속학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시대 선조들이 갓을 얼마나 아끼고 소중히 여겼는지 들여다본다.갓은 단순히 머리에 쓰는 모자가 아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문집 '아정유고'에서 "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두네"라고 썼듯이, 갓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갓집'은 휴대용 갓 보관함으로, 당시 값비싼 흑립을 실내에 보관하거나 운반할 때 사용되었다. 말총과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들어져 쉽게 부러지거나 먼지가 앉을 수 있었기에, 갓집은 갓을 보호하는 필수품이었다.갓집은 주로 나무나 종이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귀한 재료였던 색지나 문양지로 안팎을 꾸미기도 했다. 특히 나무로 된 갓집 중에는 내부를 붉은색 비단으로 마감하고 자물쇠를 갖춘 고급스러운 형태도 있었다. 원뿔 모양의 입롱(笠籠), 뚜껑을 여닫는 입갑(笠匣)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다. 허정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원은 "착용자의 지위와 위신이 달린 기물이었던 만큼, 갓집은 '의관정제(衣冠整齊)'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갓집은 단순히 보관 용도를 넘어, 갓을 통해 드러나는 착용자의 품격과 위신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조선 시대 선비들은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고깔 모양의 '갈모'를 따로 챙겨 다녔다. '입모(笠帽)' 또는 '우모(雨帽)'라고도 불린 갈모는 갓 위에 덮어 쓰는 용도로, 기름을 먹인 종이에 가느다란 대나무살을 붙여 만들었다. 최은수 서울여대 패션산업학과 연구교수는 "흑립은 대나무를 명주실보다 가늘게 쪼개 만들었기에 물에 젖으면 쉽게 찌그러졌다"며, 갈모가 눈비를 막는 우산이자 쨍한 볕을 막는 양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갈모의 가장 큰 특징은 휴대성이었다. 쥘부채처럼 접어서 소매나 도포 자락, 혹은 배낭에 넣어 다닐 수 있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갈모를 두고 "조선은 친구의 우산을 탐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땅이다. … 작은 모양으로 깔끔하게 접을 수 있어 날씨가 맑을 때면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고 감탄했다. 이는 갈모가 지닌 실용성과 조선 선비들의 여유로운 생활 방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조선 시대에는 갓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 '갓끈' 장식 경쟁이 뜨거웠다. 양반들은 바다거북 등껍질인 '대모(玳瑁)', 산호, 옥, 마노(瑪瑙) 등 귀한 재료로 만든 구슬을 알알이 연결해 갓끈으로 사용했다. 장숙환 이화여대 의류학과 특임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갓끈은 기능보다 장식성에 치중하게 되면서 길이가 허리 밑까지 늘어지기도 했다.이러한 갓끈의 화려함은 때로는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호화로운 일부 장식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는 갓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착용자의 신분과 부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 최 교수는 "갓은 기품이 느껴지는 반투명한 검정 몸체에 다채로운 갓끈이 더해져 오늘날에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패션 소품"이라고 평가한다.갓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단순한 모자를 넘어선 문화적 상징이었다. 갓집으로 소중히 보관하고, 갈모로 날씨에 대비하며, 화려한 갓끈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담겨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갓이, K-컬처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