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부터 JMS까지..'나는 생존자다', 끝나지 않은 고통과 희망의 메시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가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긴 사건들을 피해자들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023년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파헤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후속작으로, 이번에는 형제복지원,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지존파, 삼풍백화점 붕괴 등 한국 현대사에 충격을 준 굵직한 사건들을 총 8부작에 걸쳐 다뤘다. 

 

이미 여러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수없이 조명되었던 사건들이지만, ‘나는 생존자다’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오직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차별점을 두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인 시사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별도의 내레이션을 과감히 배제했다. 또한, 피해자들의 얼굴을 가리는 모자이크나 음성을 변조하는 방식도 최소화하여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모든 사건은 생존자 본인 또는 대역의 증언을 통해 재현되었으며, 이는 시청자들이 사건의 본질과 피해자들의 고통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가해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애쓰는 생존자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시리즈의 초반부인 1∼2화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가해자 친인척들이 호주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면서도, 자신들을 찾아온 생존자들을 문전 박대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담겨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이는 과거의 비극이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함께 JMS 사건의 생존자인 메이플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메이플의 여정은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다큐멘터리는 JMS 총재 정명석이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신, 메이플이 바닷가에서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으며 행복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단순히 가해자의 처벌을 넘어, 피해자들이 고통을 딛고 삶을 회복해 나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성현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며 다큐멘터리의 제작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생존자들이 출연하기로 할 때 얼마나 힘든 결심을 했는지를 안다. 이 사건이 어떤 일인지 모두가 알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을 지키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치유의 과정을 함께하려는 깊은 의지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생존자다’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존자들의 강인한 의지와 희망을 조명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포털

정부가 아닌 '시민'이 해냈다…세월호 참사, '치유의 기록'으로 유네스코 간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비극과 이후의 시간을 담은 기록물이 세계적인 유산으로 나아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경기도교육청 산하 4·16생명안전교육원은 '단원고 4·16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등재를 위한 국내 심사를 통과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록 보존을 넘어,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노력이 국제적인 인정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이번 프로젝트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들의 유품과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활동을 묵묵히 이어온 비영리 민간단체 '4·16기억저장소'가 주도하고, 경기도4·16생명안전교육원이 힘을 보태며 결실을 본 대표적인 민관 협업 사업이다. '단원고 4·16아카이브 : 시민의 기억운동과 치유의 기록'이라는 이름 아래, 여기에는 별이 된 단원고 학생들의 평범하고도 찬란했던 생전의 일상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추모의 물결,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간절한 외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참사 이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서로를 보듬고 다시 일어서려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치열한 회복의 여정 또한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이 기록물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국가나 기관의 공식적인 시각이 아닌, 참사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유가족과, 함께 아파하고 행동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사회적 재난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린 살아있는 목소리의 집합체다.더 나아가, 이 아카이브는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상처 입은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중한 사례다. 기억을 꺼내어 말하고, 함께 모으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은 단순히 과거를 박제하는 것을 넘어, 아픔을 직시하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었다. 경기도교육원은 이러한 의미를 더하기 위해, '단원고 4·16기억교실' 존치 과정을 담아낸 구술 기록화 사업(2021~2023년)의 결과물도 함께 제출했다.국내 심사라는 큰 산을 넘은 '단원고 4·16아카이브'는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한다. 오는 2026년 6월 열릴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총회에서 최종 등재 결정을 받기 위해, 국가유산청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마지막 단계를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제는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