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10명 중 8명은 책 읽는다"…알고 보니 1년 평균 독서량은 고작 '5.4권'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오랜 통념에 반기를 드는 듯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성인 10명 중 8명은 종이책을 손에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수치에 안도하기는 이르다.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독서'라고 부르는 행위의 정의와 형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감지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산하 한국출판독서정책연구소는 최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독서문화 통계' 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종이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80.4%에 달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고무적인 수치다.

 

그러나 독서의 범주를 넓히자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이번 조사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독서'의 개념을 대폭 확장했다. 종이로 된 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오디오북은 물론, 이제는 대세 콘텐츠로 자리 잡은 웹툰과 웹소설, 그리고 웹진과 학술지 논문까지 모두 '읽는 행위'로 포괄한 것이다.

 

이렇게 확장된 기준으로 살펴보니, 지난 1년간 어떤 형태로든 '독서 경험'이 있는 성인은 전체의 87.8%까지 치솟았다. 종이책 독서율(80.4%)을 필두로, 웹툰(41.4%), 전자책(37.5%), 잡지·웹진(34.9%), 웹소설(27.3%)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여전히 텍스트 기반 콘텐츠를 활발히 소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양'의 측면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인당 연간 평균 독서량을 살펴보면, 종이책은 5.4권에 그쳤다. 한 달에 채 0.5권도 읽지 않는 셈이다. 반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웹툰은 연간 42.8화, 웹소설은 35.7화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책은 1.4권, 오디오북은 0.8권으로 아직은 종이책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한 권을 진득하게 읽어내는 전통적 독서 방식에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소비하는 '스낵 컬처' 형태의 콘텐츠로 독서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왜 '읽는' 것일까? 독서의 주된 목적을 묻는 질문에는 '식견을 넓히고 교양을 쌓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26.5%로 가장 높았다. 여전히 독서를 지식 습득의 중요한 통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어서'(17.9%)가 그 뒤를 바짝 쫓았고, '전문 지식 습득'(16.5%), '마음의 위안'(15.8%)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미'가 중요한 동기로 부상한 것은 웹툰과 웹소설의 폭발적인 성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사는 한국 사회의 독서 문화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전통적인 종이책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를 읽고 지식을 탐하며 위안을 얻는다. 종이책의 시대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로, 독서의 패러다임은 이미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문화포털

82세 거장 권순철, 캔버스에 새긴 시대의 비극

 한평생 캔버스 위에서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해 온 노화가의 60년 화업을 조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개막한 권순철(82) 화백의 초대전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화들을 통해 재현을 넘어선 예술의 본질을 묻는다.권순철의 그림은 편안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 덩어리와 거친 붓질로 표현된 얼굴들은 때로는 기괴하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스스로 ‘야수파적 성향’이 있다고 말할 만큼 그의 표현 방식은 격렬하다. 하지만 관객은 그 투박한 얼굴 앞에서 혐오가 아닌, 설명하기 힘든 묵직한 울림과 마주하게 된다.그의 캔버스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깊이 맞닿아 있다. 어린 시절 겪은 6·25전쟁, 그리고 ‘보도연맹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진 아버지와 삼촌의 기억은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뿌리가 되었다. 연좌제의 굴레 속에서 가족 전체가 감내해야 했던 침묵의 세월은 그의 붓 끝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따라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그리기가 아닌, 고통을 응시하고 상처를 고백하는 행위에 가깝다. 미화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비극의 한복판을 파고들어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평생에 걸쳐 반복해왔다. 그림을 통해 상흔을 치유하고, 개인의 아픔을 시대의 보편적인 감동으로 끌어올린 것이다.1944년생으로 해방 이후 우리말로 교육받은 첫 세대인 그는, 자신의 작품에 늘 ‘철’이라는 한 글자 서명을 남겼다. 이는 자신의 이름이자, 식민의 그늘을 벗어나 주체적으로 ‘우리 것’을 찾고자 했던 한결같은 의지의 표명이다. 그의 작업이 단순한 서양화의 모방이 아닌, 한국적 리얼리즘의 모색으로 평가받는 이유다.이번 전시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한 화가의 치열한 여정을 따라간다. 거친 질감의 인물화와 산 그림들은 그가 불굴의 의지로 그려내려 한 삶의 참모습이자,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대의 초상이다. 전시는 오는 3월 29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