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당장 입법" vs 경영계 "채용 축소"… 정년연장 둘러싼 '치킨게임' 시작됐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고 양대 노총까지 가세하며 급물살을 타는 정년 65세 연장 법제화 논의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숙련된 고령 근로자의 활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당장 일손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은퇴 후 연금 수령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메워 고령층의 생활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명분을 얻고 있다. 노동계 역시 더 이상 사용자 측과의 합의를 기다릴 수 없다며 연내 입법 처리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정년 연장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속도전으로 치닫는 법제화 추진 이면에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 세대의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경영·경제·법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정년 연장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청년 신규 채용 감소'를 지목했다. 경직된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규 채용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세대 간의 갈등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으며, 청년층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뼈아프다. 현재 법제화 논의는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혜택이 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극히 저조하며, 그나마도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법제화의 혜택이 강력한 노조를 등에 업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집중되고, 정작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외되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 자율에 맡길 경우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기에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동반되어야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정년 연장 논의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가장 중요한 단계를 건너뛴 채 표류하고 있다. 노동계는 임금체계 개편 등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입법만을 외치고 있고, 재계는 경직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고용과 투자 축소는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특위가 연말까지 최종안을 도출해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충분한 숙의와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정년 연장은 세대 갈등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우리 사회의 오랜 상처를 더욱 깊게 후벼 파는 결과만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포털

'안보 청구서' 날아왔다… 핵잠 받고 주한미군 역할 확대되나

 한미 양국이 안보 분야 합의를 담은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를 통해 동맹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자료에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과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지원 등 한국군 역량 강화 방안이 담겼다. 동시에 한국이 2030년까지 약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이는 동맹이 한국의 방위를 넘어 미국의 실익 증진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한미동맹의 성격이 상호 이익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와 같은 민감한 사안도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동맹의 역할 재정립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이번 합의의 핵심 중 하나는 단연 원자력추진잠수함의 한국 도입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승인했음을 재확인하며, 군 당국 차원에서 핵잠 도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그는 핵잠 도입이 동맹인 한국의 군사적 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건조 방식이나 핵연료 공급 문제 등 기술적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외교부, 국방부를 포함한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대형 잠수함 설계, 소형 원자로 개발, 농축 우라늄 확보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 나갈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역시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실현을 목표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미 양측은 전작권 전환의 3단계 검증 절차 중 두 번째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이르면 내년 중 마무리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됨을 의미한다. 이와 맞물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제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헤그세스 장관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 가능성에 대해 "역내 비상사태에 대처할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한반도 방어에 국한되었던 주한미군의 역할이 향후 중국 견제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역내 문제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이번 합의는 미국의 '안보 청구서' 성격을 띤다. 미국은 핵잠 도입 지원을 통해 한국의 자체적인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유도하는 한편, 그 대가로 대규모 무기 판매 이익을 확보하고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을 넓혀 역내 부담을 덜려는 다각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한국이 자체 방위 역량을 강화하여 북한을 전담하고,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반의 안정을 관리하는 미군의 역할에 집중하도록 동맹의 구조를 재편하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맹을 더욱 깊숙이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