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만 잘된 게 아니다… 해외서 앉아서 벌어들인 '배당금'만 2조원 훌쩍

 9월 경상수지가 134억 700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흑자를 내며 29개월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을 이어갔다. 이는 9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이며,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흑자 행진이다. 이러한 호실적의 배경에는 반도체와 선박 수출의 견조한 흐름과 더불어, 누적된 대외 순자산에서 발생하는 배당 및 이자 소득이 크게 기여했다. 상품수지와 본원소득수지 흑자가 동시에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전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역대급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특히 수출과 수입이 함께 늘어나는 건강한 흑자 구조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실적은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흑자 기조를 이끈 핵심 동력은 단연 상품수지였다. 상품수지는 142억 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역대 2위 수준에 올랐다. 반도체가 22.1% 급증하며 여전한 주력 품목임을 입증했고, 추석 연휴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승용차, 화공품, 기계류 등 비IT 품목의 수출까지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9.6% 증가하며 두 달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 주목할 점은 수입 역시 4.5% 늘었다는 사실이다. 국제유가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 회복과 맞물려 자본재와 소비재 수입이 크게 확대되면서, 과거의 '불황형 흑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서비스수지는 33억 2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전체 흑자 폭을 갉아먹었다. 여름 성수기가 지나며 여행수지 적자 폭은 다소 줄었지만, 원자재 수입에 쓰이는 벌크선 운임이 오르면서 운송수지가 5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여기에 계절적 요인이 사라지면서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 적자 폭도 다시 확대됐다. 반면, 본원소득수지는 29억 6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상품수지와 함께 흑자 쌍끌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해 벌어들인 배당소득이 크게 늘어난 덕분으로, 한국 경제가 해외 자산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은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기존 전망치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10월에는 조업일수 감소로 잠시 주춤하겠지만, 11월부터는 반도체 수출 호조와 유가 안정 등에 힘입어 다시 양호한 흐름을 회복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전망 속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향후 우리 경제의 향방을 가를 중대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해당 투자가 관련 원부자재 수출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 국내 제조업의 기반을 흔드는 '산업 공동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문화포털

노동계 "당장 입법" vs 경영계 "채용 축소"… 정년연장 둘러싼 '치킨게임' 시작됐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고 양대 노총까지 가세하며 급물살을 타는 정년 65세 연장 법제화 논의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숙련된 고령 근로자의 활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당장 일손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은퇴 후 연금 수령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메워 고령층의 생활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명분을 얻고 있다. 노동계 역시 더 이상 사용자 측과의 합의를 기다릴 수 없다며 연내 입법 처리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정년 연장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하지만 속도전으로 치닫는 법제화 추진 이면에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 세대의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경영·경제·법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정년 연장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청년 신규 채용 감소'를 지목했다. 경직된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규 채용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세대 간의 갈등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으며, 청년층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정년 연장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뼈아프다. 현재 법제화 논의는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혜택이 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극히 저조하며, 그나마도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법제화의 혜택이 강력한 노조를 등에 업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집중되고, 정작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외되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 자율에 맡길 경우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기에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동반되어야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결국 정년 연장 논의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가장 중요한 단계를 건너뛴 채 표류하고 있다. 노동계는 임금체계 개편 등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입법만을 외치고 있고, 재계는 경직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고용과 투자 축소는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특위가 연말까지 최종안을 도출해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충분한 숙의와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정년 연장은 세대 갈등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우리 사회의 오랜 상처를 더욱 깊게 후벼 파는 결과만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