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돌변, "그들은 평생 배터리만 만든 전문가들"…한국인 편든 진짜 속내는?

 미국 대선 국면의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기술자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에 대해 이례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자국 우선주의와 강경한 이민 정책을 내세우던 기존의 입장과는 다소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필요한 해외 기술 인력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조지아 사태를 그 핵심 사례로 직접 거론했다. 그는 미국이 갖지 못한 특정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외부의 인재를 데려와야만 한다고 역설하며, 미국의 해외 투자 유치와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체포된 한국인들을 "평생 배터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칭하며, 배터리 제조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분야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들 전문가 약 500~600명이 공장 설립 초기 단계에서 미국인 근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생산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 이민 당국은 이러한 핵심적인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으려 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행정 당국의 경직된 대응을 문제 삼았다.

 


이번 사태는 지난 9월,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현장을 급습한 이민 당국은 단기 상용 비자(B-1)나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로 입국한 한국인 노동자 317명을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고 구금 조치했다. 이 사건은 한미 양국의 핵심 경제 협력 프로젝트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으로 비화하며 외교적 문제로까지 번질 뻔했다. 첨단 기술 이전을 위해 파견된 필수 인력을 단순 불법 노동자로 취급한 이민 당국의 조치에 대해, 현지에서도 과잉 단속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이민 당국의 강압적인 단속에 맞서 구금되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석방된 한국인 근로자 약 200명은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ABC 방송을 통해 ICE가 인종차별적인 프로파일링 수사를 벌였으며, 체포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등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행정 절차상의 문제를 넘어 인종차별과 인권침해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이번 소송은 미국 내 이민 정책과 외국인 전문 인력 처우에 대한 중요한 법적 판례를 남길 전망이다.

 

문화포털

서울 대신 갱도 택했던 화가 황재형 별세

 한국인의 땀방울과 거친 손마디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민중미술의 한 획을 그었던 황재형 화백이 27일 별세했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학교 회화과 재학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81년 미술 그룹 ‘임술년’을 결성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탄광 매몰 사고로 희생된 광부의 작업복을 묘사한 ‘황지 330’을 발표하며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될 만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화려한 서울의 삶 대신 척박한 현장을 선택하게 된 고인의 예술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인은 1982년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신념 하나로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에서 담론으로만 떠돌던 노동의 가치를 직접 몸으로 겪어내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는 단순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광부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갱도 깊숙이 들어가 막장 노동자가 되어 석탄을 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겪은 실존적 고뇌는 훗날 ‘식사’, ‘광부 초상’ 등 그의 대표작들로 승화되었다. 신경림 시인은 그를 두고 "목에 힘을 주는 화가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기는 화가"라며 극찬하기도 했다.황 화백의 작업 방식은 독창적이고도 처절했다. 그는 갱도 안의 공기를 화폭에 담기 위해 캔버스 위에 실제 석탄 가루를 섞은 물감을 사용하거나 흙과 같은 혼합 재료를 썼다. 1985년부터 시작해 20여 년이 지난 2007년에야 완성한 ‘식사 Ⅱ’는 좁은 갱도 안에서 식사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생존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그는 탄광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넘어 한국의 산세를 담은 ‘백두대간’ 연작에도 수십 년을 매달렸다. 지각 변동을 뚫고 솟아오른 땅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그리며, 억눌린 자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다.생전 고인은 자신을 수식하는 ‘광부 화가’라는 호칭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피력했다. 그는 세상 어디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곧 ‘막장’이라며, 자아를 실현하지 못한 채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 역시 또 다른 의미의 광부라고 말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도 본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수많은 광부가 존재한다는 그의 통찰은 노동의 가치가 소외된 현대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경종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이 시대의 모든 ‘광부’에게 작은 위로와 이야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화폭을 통해 그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고자 했다.고인의 예술적 업적은 대외적으로도 높게 평가받았다.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정통성을 잇는 작가로 공인받았고,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회천(回天)’을 열어 평생의 작업 세계를 대중 앞에 펼쳐 보였다. 유가족 측은 고인이 40여 년간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소외된 이들의 실존을 담기 위해 질긴 고무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작업 여정을 이어왔다고 회고했다. 노동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증명하려 했던 화가의 치열했던 붓질은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황재형 화백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아내 모진명 씨와 아들 제윤 씨, 딸 정아 씨가 슬픔 속에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발인은 오는 3월 1일 오전 7시 40분에 엄수될 예정이다.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그려낸 광부의 얼굴과 강원도의 풍경들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아 그가 찾고자 했던 '현장의 진실'을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그의 예술혼은 한국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태백의 노을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며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