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지지한 ‘비밀 종전 계획’…젤렌스키는 ‘OK’, 유럽은 ‘격노’

 미국이 러시아와 비밀리에 협상해 온 우크라이나 종전 계획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해 온 이 계획을 이제 우크라이나와도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이라고 자신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직접 우크라이나 측과 만나 종전 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모종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종전 논의를 주도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번 평화 구상은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상당 기간 구체적으로 다듬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레빗 대변인에 따르면, 위트코프 특사와 루비오 장관은 한 달 넘게 이 구상을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과 접촉해왔다. 양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찾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구상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지지를 표명했다는 점은 이 계획에 상당한 무게를 싣는다. 미국 행정부의 최고 결정권자가 직접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 종전 계획이 단순한 실무 차원의 논의를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우크라이나 역시 호응하는 모양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댄 드리스컬 미 육군장관과의 회담 후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논의했다”고 밝히며, 종전 계획의 세부 조항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 팀’을 구성해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심지어 며칠 내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계획의 주요 내용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발표까지 나오면서, 종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웠다. 앞서 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비밀 계획은 우크라이나 평화체제, 안전보장, 유럽 안보, 그리고 미·러·우 3국의 미래 관계 구상 등 4가지 범주 아래 총 28개 항목으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밀 협상 소식에 유럽은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반발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 고위대표인 카야 칼라스는 “어떤 종전 계획이든 우크라이나와 유럽인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못 박으며, 논의 과정에서 유럽이 배제된 것에 대한 불만을 명확히 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의 양보에 관해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미국이 유럽의 안보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러시아와 일방적인 거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미국의 ‘깜짝’ 종전 계획 발표는 전쟁 종식의 기대감과 함께, 동맹국인 유럽과의 외교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불씨를 지피며 향후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문화포털

나라가 만든 제도, 왜 그림의 떡인가?…'대체인력 없고, 동료 눈치 보여' 유명무실한 가족돌봄

 정부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가족돌봄휴가·휴직' 제도가 정작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그림의 떡'으로 전락한 현실이 대전 지역의 설문조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대전연구원이 20~50대 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응답자 10명 중 4명(휴가 40.4%, 휴직 43.2%)은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근로자가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연간 최장 10일의 휴가나 90일의 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제도의 존재 자체가 시민들의 삶에 가닿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과다.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정작 필요한 사람이 그 존재를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이다.설령 제도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벽은 높았다. 제도를 알고 있지만 사용하지 못했다고 답한 이들은 그 이유로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회사 사정',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 보이는 조직 문화', 그리고 '무급으로 인한 소득 감소'라는 삼중고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특히 경제적 부담은 제도 사용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현행 무급 제도를 유급으로 전환할 경우 사용하겠냐는 질문에 무려 86.7%가 '그렇다'고 답한 사실은, 돌봄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당장의 생계 문제 때문에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딜레마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제도가 돌봄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기보다는, 오롯이 개인의 희생으로 감내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이러한 제도의 공백은 돌봄이 필요한 부모를 둔 가정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36.7%가 돌봄이 필요한 부모가 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는 매일 약을 챙겨드려야 하거나(79.1%), 병원 방문이나 장보기 등 필수적인 외부 활동을 혼자 하기 어려우신(40.2%)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충을 겪는 집단은 30대 여성이었다. 이들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육아 부담이 한창인 상황에서 연로한 부모 돌봄 책임까지 떠안는 '이중 돌봄'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이는 개인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결국 경력 단절로 이어져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을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결국 전문가들은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류유선 대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일과 생활의 균형 정책 대상을 자녀에게만 한정하지 말고, 부모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중 돌봄의 무게에 신음하는 30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단기적인 가족돌봄휴가를 현실적인 수준에서 '유급화'하여 사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장기적인 가족돌봄휴직 역시 기존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처럼 소득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초고령화 사회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지금, 더 이상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