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냉소, 저항과 무력감 사이…20대 화가들의 '진짜' 속마음

 서울 강남의 하이트컬렉션이 2025년 하반기 기획전으로 Z세대 작가 4인의 회화를 조명하는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을 선보인다. 2014년부터 꾸준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에는 강예빈, 이오이, 조은시, 조은형 등 이제 막 미술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신진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디지털 네이티브 환경에서 자라난 Z세대의 복합적인 시각 경험이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변환되고 재해석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들은 도시의 인공적인 풍경과 가공되지 않은 자연, 스크린 속의 이미지와 현실의 감각이 뒤섞인 세상을 살아가며, 그 혼재된 경험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캔버스 위에 펼쳐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미술사의 장구한 흐름이나 거대 담론을 좇기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공기, 습기, 정서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들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에게 그림은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온몸으로 감각하고 체득한 세계를 시각적으로 번역해내는 과정 그 자체다. 예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포착한 일상의 풍경과 내밀한 상상력은 캔버스 위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도 하고, 때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색과 질감의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관람객은 이들의 그림을 통해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마치 특정 공간의 분위기나 감정을 피부로 느끼는 듯한 공감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인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이 소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청년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기대, 물질적 풍요에 대한 동경과 그 이면의 공허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전시는 1960년대 파리 청년들의 이와 같은 감정의 양가성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Z세대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있음을 이야기한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상과 냉소적인 현실 인식,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의지와 깊은 무력감이 동시에 차오르는 Z세대의 복잡한 내면은 네 작가의 회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들의 그림이 때로는 찬란하게 빛나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다.

 

결국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 전시는 단순히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모아놓은 것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세대의 정서적 풍경을 담아낸 자화상과 같다. 이성휘, 이선주 공동기획으로 하이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Z세대가 세계를 인식하고 소화하는 방식을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하며, 관람객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의 세계를 선사한다. 전시는 오는 12월 13일까지 이어지며, 오늘날 가장 젊은 예술가들이 포착한 시대의 감수성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포털

일터가 '인권침해 지뢰밭'…가해자 1위는 압도적으로 '이 사람'

 한국 사회에서 인권침해를 가장 빈번하게 저지르는 주체는 '50대 남성 직장 상사'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7월부터 8월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만 7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인권의식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 절반에 가까운 45.2%가 그 장소로 '직장'을 지목했다. 이는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이웃이나 동호회 등 '지역사회'(28.3%)보다 16.9%포인트나 높은 수치로, 일터가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인권침해 가해자의 프로필은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로 '직장 상사나 상급자'를 지목한 비율이 26.6%에 달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인 '이웃이나 동호회 사람들'(15.4%)보다 1.7배나 높은 수치이며, 3위인 '고객이나 소비자'(8.1%)와는 격차를 더 벌린다. 가해자의 성별은 남성이 58.4%로 여성(33.4%)보다 현저히 많았으며, 연령대별로는 50대가 34.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 뒤를 60대 이상(28.2%)이 이어, 중장년 및 노년층이 전체 가해자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17.5%), 30대(8.2%), 20대 이하(2.2%)가 그 뒤를 이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대다수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인권침해를 경험한 사람들의 79.2%, 즉 10명 중 8명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거나 시정을 요구한 경우는 13.2%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침해 행위에 동조한 사람도 7.7%나 존재했다. 피해자들이 침묵을 선택한 주된 이유로는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심각하지 않다고 여겨서', 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는 인권 감수성 부족과 함께 피해자 구제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이 만연해 있음을 시사한다.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한국의 경직된 조직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유은혜 숭실대 교수는 "한국 사회 인권침해의 전형적인 가해자 프로필은 '40~50대 남성 직장 상사'"라고 요약하며 직장 중심의 맞춤형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직장 내 인권침해는 조직의 위계 구조와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가 결합한 문제"라며, 피해를 인지하더라도 신고 후 겪게 될 불이익이나 조직 내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부분이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직장 내 인권 개선이 요원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