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무직인데 1억 증여세? 이혜훈 해명 압박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세 아들의 재산 증여 및 증여세 납부 과정을 둘러싼 '금수저' 논란에 휩싸이며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까지 증여세 대납 의혹이 제기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이 후보자의 세 아들은 총 47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각 10억 3천만 원 상당의 가족회사 주식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주식은 시어머니로부터 2016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증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의 핵심은 증여세 납부 주체다. 국민의힘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지난 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세 아들이 2021년 당시 직업이 없었음에도 총 1억 2900만 원의 증여세를 납부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박 의원은 "세 아들이 무슨 돈으로 이 많은 증여세를 냈는지 소명해야 한다"며 증여세 대납 의혹을 제기했다. 현행법상 부모가 증여세를 대신 납부할 경우 이 또한 증여로 간주되어 추가 세금이 부과된다.

 

야당의 공세도 거세다. 조국혁신당 한가선 대변인은 이 후보자의 재산이 6년 만에 약 113억 원 증가한 점을 언급하며, "보통 청년들은 6년간 1억 모으기도 빠듯한데, 이 후보자 앞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과연 이 사람이 서민들의 삶에도 예산이 흐르도록 나랏돈을 관리할 적임자인지 의문"이라며 후보자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또한,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다섯 번이나 공천을 줘놓고 이제 와서 뒷북 검증을 한다"며 자당 시스템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의 파상 공세에 대해 이 후보자 측은 "내야 할 모든 세금을 완납했다"며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6일 출근길에서도 각종 의혹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사안을 소상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세 아들의 증여세 납부 재원과 재산 형성 과정 등을 명확히 소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문화포털

스벅 논란 속 재소환된 '광주 비디오' 실제 주인공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파문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재점화한 가운데,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주인공이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아닌 한국인 유영길 기자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동안 대중에게는 영화를 통해 '푸른 눈의 목격자'가 최초의 기록자로 각인되어 왔으나, 최근 발굴된 사료와 영상은 1980년 5월 19일 오전 이미 현장을 누볐던 미국 CBS 서울지국 소속 유영길 영상 기자의 행적을 뚜렷하게 증명한다.유 기자의 기록은 계엄군이 조직적으로 부인해 온 초기 강경 진압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다. 5월 18일 저녁 광주에 잠입한 그는 이튿날 오전 10시경부터 금남로와 광주상공회의소 옥상을 오가며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동구청 상황일지에는 유 기자를 포함한 CBS 취재진의 움직임이 분 단위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이미 한국인 기자가 사선을 넘나들며 진실을 포착했음을 보여준다.그가 남긴 6분 30초 분량의 원본 영상에는 도로 위에서 대검을 장착한 채 시민들을 추격하는 계엄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는 훗날 청문회에서 "착검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던 군 지휘관들의 거짓 증언을 무너뜨리는 사료적 근거가 되었다. 유 기자는 최첨단 컬러 ENG 카메라를 활용해 현장의 전자 신호를 즉각 기록했고, 이 영상은 도쿄를 거쳐 미국 본사로 급송되어 현지 시각 5월 19일 저녁 뉴스에 전 세계 최초로 보도되는 기록을 세웠다.독일인 힌츠페터 기자의 영상이 주로 진압 이후의 참상과 시민들의 결속에 집중했다면, 유영길의 영상은 사건의 발단이 된 초동 진압 과정을 정밀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힌츠페터가 16mm 필름 현상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느라 보도가 며칠 늦어진 반면, 유 기자의 영상은 사건 발생 직후 타전되어 국제 사회에 즉각적인 충격을 던졌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비밀리에 유통되던 '광주 비디오'의 핵심 장면들 역시 상당 부분 유 기자의 렌즈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유영길 기자는 생전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의 순간을 현장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비극에 대해 그는 훗날 영화 촬영 감독으로서 당시의 참상을 스크린에 재현하며 회한을 달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헌신은 사후 41년이 지난 2021년,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오월광주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공식적으로 복원되었다.이재명 대통령이 역사 왜곡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선포한 현시점에서 유영길이라는 이름의 복원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기자가 누구보다 먼저 동포의 비극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우리 민주주의가 외부의 시선뿐만 아니라 내부의 용기 있는 기록 투쟁 위에 세워졌음을 상기시킨다. 힌츠페터와 함께 기억되어야 할 그의 카메라는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는 역사의 정의를 증명하는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