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해야 공천 받나? 지방선거 앞두고 번지는 삭발 릴레이

 박형준 부산시장은 2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전격적인 삭발식을 거행했다. 박 시장은 강원과 전북의 특별법이 공청회를 거쳐 신속히 통과된 것과 달리 부산 관련 법안만 소위원회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를 명백한 지역 차별로 규정했다. 평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소통을 중시해온 그가 2004년 정계 입문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자해적 정치 행위인 삭발을 선택한 것은, 정쟁의 벽에 가로막힌 지역 현안을 돌파하겠다는 독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정치권 삭발의 문을 연 인물은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였다. 김 지사는 지난 2월 국회 본관 앞에서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의 입법을 촉구하며 머리카락을 잘랐고, 이후 현장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며 중앙 정치권을 압박했다. 다른 지역의 통합 논의는 속도를 내는 반면 강원도의 핵심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불만이 삭발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강경 투쟁 이후 김 지사는 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단수 공천을 받아 강원지사 후보로 확정되며 정치적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당의 결정에 항의하는 수단으로 삭발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현역 광역단체장 중 처음으로 컷오프 통보를 받자마자 청주의 한 이용원을 찾아 머리를 밀고 그 과정을 SNS에 생중계했다. 김 지사는 자신을 심판할 권한은 오직 충북도민에게만 있다며 당 공관위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삭발에 그치지 않고 법원에 공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까지 병행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는 공천 탈락이라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절박한 행보로 해석된다.

 

야권에서도 삭발 투쟁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충남 천안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 도중 대전과 충남의 행정 통합을 촉구하며 무대 위에서 삭발을 단행했다. 박 의원은 지역 후배들이 단식과 삭발로 투쟁하는 모습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며 중대한 결심의 배경을 설명했다. 통합 시장 출마 의지를 다지며 머리카락까지 잘랐던 그는 지역의 미래를 위한 압도적 성장을 강조했으나, 이후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결국 지난 13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며 삭발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삭발 행렬이 지방선거가 임박할수록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투쟁력과 지역에 대한 충성심을 단기간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천 경합이 치열하거나 지역 숙원 사업이 표류하는 지역의 후보자들에게 삭발은 유권자의 시선을 붙잡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책적 대안 제시보다는 신체적 가해를 통한 감성 호소에 치중하는 정치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번지는 삭발 릴레이는 각 후보자가 처한 절박한 정치적 상황을 대변한다. 부산의 특별법 제정부터 충북의 공천 갈등, 강원의 입법 촉구까지 저마다의 명분은 뚜렷하지만 그 방식은 모두 극단적인 투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6·3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후보자 간의 선명성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며, 국회와 지역 정가에서는 또 다른 삭발이나 단식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실제 지역 현안 해결이나 선거 승리로 이어질지는 결국 유권자들의 냉정한 판단에 맡겨지게 되었다.

 

문화포털

노벨 이어 NBCC…한강의 새 기록

소설가 한강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이 상 소설 부문을 받은 것은 처음으로,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또 한 번 세계 문학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NBCC는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년 출판 연도 시상식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영어판 'We Do Not Part'를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NBCC상은 미국 전역의 문학평론가들이 시, 소설, 논픽션, 전기, 번역서 등 각 부문에서 한 해의 가장 뛰어난 책을 선정하는 상으로, 미국 출판계와 비평계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한강은 지난 1월 최종 후보 5편에 오른 뒤 경쟁 끝에 수상자로 확정됐다. 한국 문학이 NBCC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김혜순 시인이 시 부문을 수상했지만, 소설 부문에서 한국 작가가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최초다. 특히 번역 작품이 NBCC 소설상을 받은 것은 2001년 W.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2008년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 이후 세 번째로, 매우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된다.'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인물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제주로 향하는 여정을 따라가며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기억,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교차시킨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서사 속에서 국가 폭력이 남긴 상흔과 희생의 기억을 한강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영어판 번역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가 공동으로 맡았다.미국 문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NBCC 소설 부문 심사위원장인 헤더 스콧 파팅턴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눈부신 우울과 암울한 기운, 중얼거리는 듯한 문장이 어우러진 작품”이라며 “꿈처럼 오래 남는 강렬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도 수상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며, 작품이 다룬 제주 4·3의 역사성과 문학적 깊이를 함께 조명했다.이번 수상은 한강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문학이 번역과 비평의 장벽을 넘어 세계 독자와 본격적으로 만나는 흐름이 한층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