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무더위에 해운대 수만 명 인파… 5월 바다에 '풍덩'

 계절의 시계가 한 달 이상 앞서가며 전국이 때 이른 무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5월의 세 번째 일요일인 17일, 영남권을 중심으로 낮 최고기온이 폭염 주의보 기준인 33도를 훌쩍 넘어서는 등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이어졌다. 기상청 관측 결과 경남 밀양의 수은주가 35.1도까지 치솟았고, 경산과 경주 역시 35도 안팎을 기록하며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하루를 보냈다.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이면서 시민들은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로 나섰고, 도심 곳곳의 분수대와 그늘막 아래는 더위를 피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의 대표적 명소인 해운대해수욕장은 이미 한여름 피서철과 다름없는 풍경이 연출됐다. 현재 진행 중인 해운대 모래축제를 관람하려는 인파에 때 이른 더위를 식히려는 나들이객까지 가세하며 백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수만 명의 방문객 중 상당수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열기를 식혔고, 일부 시민들은 아예 수영복을 갖춰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겼다. 백사장 곳곳에는 양산과 모자로 강렬한 햇빛을 차단한 채 산책하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으며, 인근 상권 역시 갑작스러운 인파 유입으로 활기를 띠었다.

 


해운대뿐만 아니라 광안리와 송도, 다대포 등 부산 시내 주요 해수욕장에도 휴일을 즐기려는 인파가 대거 몰렸다. 바다를 찾지 못한 시민들은 시원한 숲바람을 찾아 산으로 향했다. 금정산과 황령산 등 주요 등산로에는 아침 일찍부터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으며, 태종대와 어린이대공원 같은 유원지에도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했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라 범어사와 삼광사 등 대형 사찰에는 연등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며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다.

 

기상청은 이번 고온 현상의 원인을 한반도 상공에 머무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맑은 날씨 속에 강한 일사가 내리쬐면서 지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고, 따뜻한 남서풍이 유입되면서 기온을 더욱 끌어올린 것이다. 18일 아침 최저기온은 12~20도 사이로 시작하겠으나, 낮에는 서울 30도, 대구 34도, 광주 32도 등 전국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돌 것으로 예보됐다. 이러한 무더위는 화요일인 19일까지 이어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건강 관리와 야외 활동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기온 상승과 함께 자외선과 오존 수치도 비상이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자외선 지수가 '매우 높음' 단계까지 올라가면서 수십 분만 햇볕에 노출되어도 피부 화상을 입을 위험이 커졌다. 특히 대기 오염물질이 햇빛과 반응해 생성되는 오존 농도 역시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나쁨' 수준을 보이겠으며, 울산과 경북 일부 지역은 '매우 나쁨'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호흡기 질환자나 노약자의 경우 오존 농도가 높은 오후 시간대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외출 시에는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것을 권고했다.

 

바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당분간 서해상과 제주도 해상을 중심으로 짙은 바다 안개가 낄 것으로 예상되어 해상 교통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섬 지역은 가시거리가 200m 이하로 짧아지는 곳이 많아 선박 운항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은 고기압 영향권 내에서 당분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수요일 이후에나 기온이 소폭 하락하며 평년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화포털

우아함 대신 야수성… 마요 감독이 뒤집은 고전의 틀

 고전 동화의 순수함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배신을 선사했다.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트라우마를 채워 넣었다. 장 크리스토프 마요 예술감독은 익숙한 백조 이야기를 왕가 내부의 불륜과 복수, 통제와 일탈이 뒤섞인 현대적 심리극으로 탈바꿈시켰다. 무대 위에는 우아한 공주 대신 본능에 충실한 인간 군상이 등장해 120분간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이번 공연의 가장 큰 파격은 인물 관계의 재설정이다. 악마인 '밤의 여왕'은 단순히 왕자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왕과 은밀한 불륜 관계를 맺어온 인물로 묘사된다. 왕가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여왕의 원한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복수의 동력이 된다. 이에 맞서는 왕비 역시 인자한 어머니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들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며 끝내 흑조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광기를 보여준다. 고전의 전형성을 탈피한 이러한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 본성의 모호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마요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전형적인 발레 연기가 아닌 '살아 있는 안무'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무용수들은 정교한 테크닉을 넘어 노골적이고 관능적인 몸짓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했다. 특히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와 궁중 여인들의 모습은 방탕하고 도발적이며, 신체적 접촉을 서슴지 않는 연출을 통해 왕자가 느끼는 혼란과 욕망을 시각화했다. 왕과 왕비 또한 아들을 위협하듯 압도하는 동작을 선보이며, 권력과 통제가 지배하는 왕실의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작품의 중심에는 '마요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이 있었다. 왕자 역을 맡은 그는 섬세한 표정 변화와 고갯짓 하나만으로도 캐릭터가 느끼는 절박함과 환희를 객석 끝까지 전달했다. 안재용은 동작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첫사랑을 향한 순수함과 흑조의 유혹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왕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의 열연은 현대 발레가 지향하는 서사적 깊이를 더하며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시각적인 연출 역시 절제의 미학을 극대화했다. 화려한 중세 궁전 대신 단순화된 기하학적 구조물이 무대를 채웠고, 의상은 백조의 '야수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발레리나의 상징인 튀튀 대신 거친 깃털이 달린 짧은 원피스와 조류의 발톱을 연상시키는 긴 장갑을 사용해, 천상의 존재가 아닌 야생 동물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접근은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이번 내한 공연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제작진은 인간 역시 길을 잃은 존재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고전의 권위에 도전했다. 화성과 서울을 거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이번 무대는 오는 20일 대전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현대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백조의 호수'는 한국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잔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