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지금 '전쟁 중'…민주당 vs 무소속·혁신당 대격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막이 오르자마자 호남권 기초단체장 선거구가 유례없는 격전지로 변모하며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무난한 우세를 점치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군 단위의 기초권력 지형에서는 무소속 후보와 조국혁신당의 공세가 거세지며 민주당의 일당 독점 구도에 강력한 경고등이 켜진 형국이다.

 

전남 지역의 후보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민주당의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체 22개 시·군 중 무소속 후보 비중이 40%에 육박하며,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배제된 뒤 독자 노선을 택한 현역 단체장들이다.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춘 이들이 민주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면서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지역 정가의 불문율이 사실상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순천과 강진 등 전남 주요 지역의 여론조사 지표는 이미 요동치고 있다. 순천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거나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강진과 진도 역시 무소속 후보들의 강세가 뚜렷해 민주당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 유권자들이 정당의 간판보다는 인물의 행정 경험과 지역 밀착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조국혁신당이 내세운 이른바 '호남 메기론'도 단순한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담양과 함평 등지에서 혁신당 후보들은 민주당 후보와 1%포인트 미만의 초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으며, 신안에서는 오히려 혁신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밀어내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민주당에 실망한 호남 민심이 대안 세력으로서 혁신당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북 지역 역시 민주당의 우위 속에서도 견제 심리가 작동하며 야권 후보들의 추격이 매섭다. 남원과 부안 등지에서 혁신당 후보들은 20~30%대의 의미 있는 지지율을 확보하며 민주당의 일방적인 독주를 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비민주당 후보들이 기초단체장 선거와 연계한 집중 유세를 펼치면서 지역 전체의 선거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이번 균열의 근본 원인으로 민주당의 공천 잡음과 일당 독점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지목한다.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논란이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왔고, 이것이 무소속과 신생 정당의 약진으로 이어지는 반사 이익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진행될수록 각 진영의 세 대결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이며, 호남 기초권력의 최종 향방은 투표함이 열리는 순간까지 안갯속 정국이 이어질 전망이다.

 

문화포털

스벅 논란 속 재소환된 '광주 비디오' 실제 주인공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파문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재점화한 가운데,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주인공이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아닌 한국인 유영길 기자라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동안 대중에게는 영화를 통해 '푸른 눈의 목격자'가 최초의 기록자로 각인되어 왔으나, 최근 발굴된 사료와 영상은 1980년 5월 19일 오전 이미 현장을 누볐던 미국 CBS 서울지국 소속 유영길 영상 기자의 행적을 뚜렷하게 증명한다.유 기자의 기록은 계엄군이 조직적으로 부인해 온 초기 강경 진압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다. 5월 18일 저녁 광주에 잠입한 그는 이튿날 오전 10시경부터 금남로와 광주상공회의소 옥상을 오가며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동구청 상황일지에는 유 기자를 포함한 CBS 취재진의 움직임이 분 단위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이미 한국인 기자가 사선을 넘나들며 진실을 포착했음을 보여준다.그가 남긴 6분 30초 분량의 원본 영상에는 도로 위에서 대검을 장착한 채 시민들을 추격하는 계엄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는 훗날 청문회에서 "착검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던 군 지휘관들의 거짓 증언을 무너뜨리는 사료적 근거가 되었다. 유 기자는 최첨단 컬러 ENG 카메라를 활용해 현장의 전자 신호를 즉각 기록했고, 이 영상은 도쿄를 거쳐 미국 본사로 급송되어 현지 시각 5월 19일 저녁 뉴스에 전 세계 최초로 보도되는 기록을 세웠다.독일인 힌츠페터 기자의 영상이 주로 진압 이후의 참상과 시민들의 결속에 집중했다면, 유영길의 영상은 사건의 발단이 된 초동 진압 과정을 정밀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힌츠페터가 16mm 필름 현상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느라 보도가 며칠 늦어진 반면, 유 기자의 영상은 사건 발생 직후 타전되어 국제 사회에 즉각적인 충격을 던졌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비밀리에 유통되던 '광주 비디오'의 핵심 장면들 역시 상당 부분 유 기자의 렌즈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유영길 기자는 생전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의 순간을 현장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비극에 대해 그는 훗날 영화 촬영 감독으로서 당시의 참상을 스크린에 재현하며 회한을 달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헌신은 사후 41년이 지난 2021년,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오월광주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공식적으로 복원되었다.이재명 대통령이 역사 왜곡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선포한 현시점에서 유영길이라는 이름의 복원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기자가 누구보다 먼저 동포의 비극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우리 민주주의가 외부의 시선뿐만 아니라 내부의 용기 있는 기록 투쟁 위에 세워졌음을 상기시킨다. 힌츠페터와 함께 기억되어야 할 그의 카메라는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는 역사의 정의를 증명하는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