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통령의 엇갈린 선거법, 중립인가 자유인가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11월 중간선거를 준비 중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국면에서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산의 주요 전통시장을 방문해 해양수도 육성과 균형 발전을 약속하며 민생 행보에 집중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유세 현장에서 자당 후보를 무대 위로 불러 직접적인 지지를 호소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선거와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하고, 다른 한쪽은 '일등 공신'을 자처하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공직선거법 제85조에 따라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 역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직자로 간주되어, 선거 직전 특정 지역을 방문하거나 정책적 약속을 하는 행위 자체가 야권으로부터 '관권 선거'라는 거센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된다. 헌법재판소 또한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보다 선거의 공정성과 중립 의무가 우선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권력을 동원해 선거 결과를 조작했던 아픈 역사에 대한 반성적 조치이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만의 독특한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정치 문화는 대통령을 국가 원수인 동시에 정당을 이끄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정의한다. 미국판 공직선거법인 '해치법(Hatch Act)'은 일반 연방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대통령과 부통령은 예외로 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야당 후보를 맹비난하고 여당 후보를 치켜세우는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이유다.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의 유세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정당한 정치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며, 오히려 적극적인 지지 호소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차이는 선거 비용 처리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인 선거 운동을 할 때는 공무 수행과 분리하여 관련 경비를 사비나 정당 기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유세를 통해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SNS를 활용한 노골적인 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공식적인 국정 수행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에, 방문지 선정이나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데 있어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법적 검토를 거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유럽의 의원내각제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러한 대비는 더욱 선명해진다. 영국이나 독일, 일본의 총리들은 다수당의 지도자로서 선거전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관례다. 그들에게 선거는 당의 정책을 홍보하고 지도력을 검증받는 직접적인 심판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제적 요소와 강력한 중립 의무를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어, 선거철마다 대통령의 행보를 둘러싼 법적·정치적 논란이 반복되는 독특한 양상을 띤다.

 

결국 한·미 양국 정상이 보여주는 상반된 모습은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을 상징한다. 한국은 국가 권력의 중립성을 통해 선거의 절차적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는 반면, 미국은 정치적 리더십의 선명한 표출을 통해 결과의 책임을 묻는 방식을 선호한다. 지방선거 전야, 부산 자갈치 시장의 이재명 대통령과 뉴욕 유세장의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엇갈린 풍경은 각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투영하고 있다.

 

문화포털

이종구, 쌀 포대 대신 '반가사유상' 그린 이유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거장 이종구 작가가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 '사유(Pensive)'를 개최하며 동시대의 고통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 정부미 쌀 포대 위에 농민의 얼굴을 그려 넣으며 시대의 모순을 고발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선을 안으로 돌려 인간의 유한성과 생명의 순환을 응시한다. 7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겪은 개인적인 병고와 정년퇴임이라는 삶의 변곡점을 거치며 더욱 깊어진 예술적 성찰을 담아낸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전시의 핵심적 도상으로 등장하는 반가사유상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넘어 혼란스러운 현실을 견뎌내는 존재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주한 반가사유상의 고요한 미소에서 동시대의 비극을 치유할 힘을 발견했다. 화면 속 불상은 불길과 물결, 병든 육체와 나란히 배치되며 성스러움과 세속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불이(不二)'의 철학을 시각화한다. 이는 과거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던 그의 리얼리즘 정신이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특히 '사유_예토(팔레스타인)' 연작은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의 비극으로 확장되었음을 증명한다. 전쟁과 학살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불교적 고통의 세계인 '예토'와 겹쳐낸 이 작품은, 격렬한 비극의 현장을 절제된 침묵의 화면으로 치환한다. 작가는 감정적 과잉을 걷어낸 자리에 관람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기록해온 원로 작가가 동시대 세계 시민으로서 건네는 묵직한 연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나체와 병든 신체의 형상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치다. 암 수술과 투병 과정을 겪으며 마주한 죽음의 감각은 작가에게 몸이야말로 사유가 시작되는 가장 구체적인 무대임을 깨닫게 했다. 사회적 지위나 욕망의 외피를 벗어던진 인간의 벌거벗은 몸은 영원한 불상의 형상과 대비를 이루며, 초월적 가치와 현실의 고통이 어떻게 하나의 실존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에게 걷기와 호흡, 노화의 과정은 그 자체로 수행이자 예술적 실천이 된다.'나무' 연작에서는 생로병사의 시간이 한 폭의 풍경으로 펼쳐진다. 거대한 고목 아래 놓인 유모차와 휠체어,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진돗개는 인간과 자연이 공유하는 생명의 순환 고리를 상징한다. 여기서 진돗개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고통과 평화를 나누는 동등한 생명체로 격상된다. 학고재 측은 이번 전시가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기보다 형상 사이의 간극을 통해 관객들이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동시대의 재난과 존엄에 대해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충남 서산 출신의 이종구 작가는 중앙대 교수와 인천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 미술계의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은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민중미술가라는 수식어를 넘어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하는 구도자적 예술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삼청동 본관과 온라인 전시장 '학고재 오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사유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