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 별세에 전 세계 애도…회화의 전설 지다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며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힌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89번째 생일을 앞두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호크니의 대변인은 그가 지난 11일 런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노년의 나이에도 아이패드를 들고 프랑스 노르망디의 봄을 그리며 멈추지 않는 창작욕을 과시했던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비보는 전 세계 팬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다. 그는 주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하며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온 시대의 목격자였다.

 

호크니의 예술 인생은 시작부터 파격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추상표현주의가 화단을 지배하며 구상 미술의 종말을 예고하던 1950년대, 그는 오히려 인간의 형상과 일상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주류 미술계에 반기를 들었다. 회화는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공유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훗날 영국 팝아트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개인적인 서사와 문학적 감수성을 결합한 독특한 화풍을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유행을 쫓기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의 소중한 관계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은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이주 이후 탄생한 '수영장 시리즈'다.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를 벗어나 마주한 LA의 강렬한 햇빛과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에게 예술적 해방감을 선사했다. 찰나의 물보라를 포착하기 위해 수주간 붓질을 거듭했던 그의 집요함은 '더 큰 첨벙'과 같은 걸작을 낳았고, 이는 현대인의 고독과 정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피터 슈레진저를 모델로 한 작품은 경매에서 생존 작가 최고가를 경신하며 거장의 위상을 입증하기도 했다.

 

호크니는 카메라 렌즈가 왜곡하는 인간의 시각 원리를 바로잡기 위해 평생을 바친 혁명가이기도 했다. 그는 단일 시점의 원근법을 '시각의 감옥'이라 비판하며,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포토 콜라주 실험을 통해 입체적인 공간감을 구현했다. 화면 밖 관람객을 향해 소실점이 뻗어 나오는 역원근법의 도입은 감상자가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형 경험을 선사했다. 이러한 시각적 탐구는 그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화가를 넘어, 공간과 시간을 캔버스 위에 재구성하는 철학자였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을 예술의 도구로 적극 수용한 얼리 어답터로서의 면모는 젊은 세대에게 그를 '가장 힙한 노화백'으로 각인시켰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아이패드를 스케치북 삼아 빛의 미묘한 변화를 기록했던 그는, 팬데믹으로 고립된 인류에게 수선화 그림과 함께 "봄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며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육체적 난청과 노년의 고독 속에서도 그는 자연의 색채를 더욱 밝고 투명하게 그려내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찬양하는 데 남은 생을 온전히 바쳤다.

 

"예술가는 은퇴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처럼 호크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그를 독창성의 화신이라 추모하며, 그의 창의성이 전 세계 미술관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한국에서도 대규모 전시를 통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는 이제 전설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찬란한 원색의 풍경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되어줄 것이다.

 

 

 

문화포털

진주, 비엔날레급 전시로 '현대미술 분관' 정조준

 경남 진주시가 과거의 역사적 이미지를 벗고 동시대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대담한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15일 막을 올린 기획전 '이미지의 미래들-서사하는 기억, 채색화를 넘어'는 그간 진주가 쌓아온 채색화 열풍을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야심 찬 시도다. 이번 전시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을 비롯해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 국립진주박물관 등 시내 곳곳의 문화 거점을 하나로 연결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김기라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부터 신진 작가까지 35명의 작품 148점이 집결해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보기 드문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이번 전시의 핵심은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주라는 도시가 가진 장소성을 예술적 서사로 치환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근대산업유산인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를 활용한 '광장의 기억' 섹션은 노동의 흔적이 남은 붉은 벽돌 건물과 현대미술이 만나 묘한 긴장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정현 작가의 조각이 야외에서 세월의 흐름을 대변하고, 내부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담아낸 신학철의 사실주의 회화가 관객을 압도한다. 거친 선으로 인간의 실존을 묻는 서용선의 작업과 동시대 청년들의 연대를 그린 이우성의 대형 회화가 나란히 배치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광장의 풍경을 완성한다.진주시가 이토록 공을 들여 비엔날레급 전시를 꾸린 배경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라는 전략적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 시는 현재 진주성 내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이 철도문화공원 부지로 이전하면,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기존 박물관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 진주관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진주가 분관을 운영할 충분한 역량과 문화적 토양을 갖추었음을 대내외에 증명하는 시험대인 셈이다. 원도심의 유휴 공간을 예술 무대로 재배치함으로써 도시 재생과 문화 향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전시 구성은 이강소, 김윤신, 심문섭 등 한국 미술의 토대를 닦은 원로 작가들의 깊이 있는 통찰에서 시작해 권오상, 정연두 등 중견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로 이어진다. 여기에 장종완 등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감각이 더해지며 세대 간의 예술적 대화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첨단 기술이나 자극적인 주제를 내세우기보다 작품들이 놓인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서로 호응하도록 배치한 연출 방식은 관람객들이 지역의 장소성을 단서 삼아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대도시 대형 전시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철도문화공원 정비고 안팎에 설치된 작품들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과 동시대 예술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학철의 '비상탈출' 속 인물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낡은 목조 트러스 구조와 어우러져 한국 현대사의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그 시선은 전시장 중앙에 걸린 이우성의 작품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로 이어지며, 과거의 비극을 딛고 함께 만들어갈 공동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장소의 기억을 예술로 꿰어내는 서사 구조는 진주라는 도시가 지닌 문화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는 결정적인 대목이다.진주의 이번 도전은 지역 문화 예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유명 작가의 작품을 빌려오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공간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해낸 기획력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를 향한 진주시의 진정성을 뒷받침한다. 전시는 8월 말까지 이어지며 진주성 주변의 원도심과 미술관을 잇는 예술의 벨트를 형성할 예정이다.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 진주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문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