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게이츠와 20년 '자선 동맹' 결별하나?

 세계적인 투자 거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20년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던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대한 연례 기부를 전격 보류했다. 통상적으로 매년 6월 말이나 7월 초에 이루어지던 수조 원 규모의 주식 기부가 올해는 실행되지 않으면서, 자산가들 사이의 자선 네트워크에 균열이 생겼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버핏은 이번 결정을 내리며 재단 측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루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핏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일정 연기를 넘어선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는 2006년부터 자신의 재산 상당 부분을 게이츠재단에 기부해 왔으며, 그 누적액만 해도 480억 달러를 상회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하지만 최근 게이츠재단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대형 로펌을 선임해 내부 조사를 진행하자, 버핏은 기부금 집행의 전제 조건으로 '도덕적 투명성'을 내걸었다. 이는 자선 사업에서도 투자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리스크 관리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두 거물 사이의 개인적인 신뢰 관계도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되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버핏은 올해 초 엡스타인 관련 법무부 자료가 공개된 이후 빌 게이츠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게이츠 역시 최근 의회 조사에서 버핏과의 마지막 소통이 지난 1월이었다고 진술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시사했다. 한때 주주총회에서 나란히 앉아 우정을 과시하던 모습은 이제 옛일이 되었으며, 게이츠는 올해 버크셔 주총에서 지정석조차 배정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버핏은 게이츠재단에 대한 기부는 멈췄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대한 지원은 변함없이 지속할 방침이다. 세 자녀의 재단과 사별한 아내의 이름을 딴 수전 톰프슨 버핏 재단 등에는 예정대로 기부금이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버핏이 자선 활동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처의 운영 방식과 윤리적 가치에 따라 자금을 선별적으로 배분하겠다는 명확한 기준을 세웠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이츠재단은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단 설립 이후 약 1100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로 군림해 왔으나, 버핏이라는 거대한 자금줄이자 정신적 지주가 이탈할 위기에 처하면서 향후 사업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빌 게이츠는 재단이 2045년까지 모든 자금을 소진하고 문을 닫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버핏의 추가 기부가 끊길 경우 재단의 존속 기간과 기부 규모는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시장과 자선업계는 버핏이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올해 연말 추수감사절 서한에 주목하고 있다. 엡스타인 관련 조사 결과가 버핏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20년 자선 동맹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될 전망이다. 투자의 귀재가 던진 이번 '기부 보류' 카드는 전 세계 고액 기부자들에게 자선 단체의 윤리적 책임이 기부 액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화포털

신윤복 '미인도', 한국 춤으로 환생

 조선 시대 풍속화의 거장 혜원 신윤복의 그림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춤사위로 재탄생한다. 국립국악원은 오는 16일과 17일 양일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무용단 기획공연 '춤, 화찬(畫讚)'을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정지된 그림 속에 박제되어 있던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화폭 이면에 숨겨진 시간과 감정의 궤적을 한국 전통 무용으로 풀어내는 시도다. 회화와 춤, 국악, 그리고 현대적인 무대 영상이 결합하여 조선 풍속화의 정취를 입체적으로 재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공연의 제목인 '화찬'은 옛 그림의 여백에 적어 넣던 감상이나 찬사를 뜻하는 말로, 이번 무대가 신윤복의 예술 세계에 보내는 헌사임을 시사한다. 작품은 신윤복의 불후의 명작 '미인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려졌을지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화공 혜원과 기녀 보배라는 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축으로 삼아, '청금상련', '월하정인', '쌍검대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신윤복의 대표작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 구조 안에 녹여냈다.극의 흐름은 장터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깊은 연정으로 발전하지만, 엄격한 신분 질서와 시대적 한계 앞에 좌절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권력가인 강대감의 잔치라는 화려한 배경 속에서 주인공 보배가 마주하는 비극적 운명은 관객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결국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절절한 사랑은 혜원의 붓끝을 통해 한 폭의 '미인도'로 승화되며 대미를 장식한다. 이는 그림 한 장에 담긴 찰나의 순간을 영원한 예술적 서사로 확장하려는 연출적 의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이번 공연의 백미는 신윤복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상을 한국 춤의 다채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점이다. 부채입춤과 한량무를 비롯해 역동적인 쌍검대무, 애절한 살풀이춤과 수건입춤 등이 극의 상황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그림 속 인물들이 느꼈을 기쁨과 슬픔, 고뇌를 섬세하게 대변한다. 특히 무용수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소극장 '풍류사랑방'의 특성을 살려 인물 간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연출을 맡은 김충한 전 예술감독은 신윤복의 화풍이 지닌 독특한 시선에 주목했다. 인물을 정면에서 포착하기보다 비스듬히 곁에서 바라보는 듯한 혜원의 구도가 오히려 관찰자로 하여금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은 무대 위 영상 기술과 결합하여 화폭의 평면적인 공간을 입체적인 무대 언어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관객들은 마치 거대한 신윤복의 화첩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된다.전통 회화와 무용의 만남은 단순히 장르 간의 결합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이 가진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박물관 유리벽 너머에 있던 고전 회화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호흡하는 살아있는 예술로 탈바꿈시켰다. 16일 오후 7시 30분과 17일 오후 5시에 진행되는 이번 무대는 조선의 풍류와 현대적 감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 춤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