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화재 6일째, 주민 보상안은 감감무소식

 인천 서해구 쿠팡 물류센터의 큰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인근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화재 진압 완료 이틀째인 22일, 신현초등학교를 비롯한 지역 내 대피소 3곳에는 여전히 200여 명의 주민이 머물며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의 주민들은 불길이 꺼졌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매캐한 연기 냄새와 집 안팎을 덮친 검은 잿가루 탓에 선뜻 귀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 당시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사후 처리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대피소 체류 기간을 늘리고 있는 셈이다.

 

대피소에서 만난 시민들은 화재가 남긴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60평생 처음 겪는 재난이었다고 입을 모으는 주민들은 창문 틈을 뚫고 들어온 악취와 새카맣게 변해버린 아파트 외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평소 지병이 있던 노약자들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천식 증상이 심해져 병원 치료를 받거나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도심 한복판에 대형 물류 시설이 들어선 것에 대한 근본적인 원망의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장기화되는 대피소 생활의 질적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고령층이 다수인 대피 주민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식단 구성과 부적절한 냉방 온도 조절 등이 주요 불편 사항으로 꼽힌다. 자극적인 즉석식품 위주의 배식으로 배탈을 겪거나, 과도한 에어컨 가동으로 추위를 견디다 못해 집에서 겨울옷을 챙겨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재난 상황에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세심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행정 당국의 보다 세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인 서해구는 현재 쿠팡 측과 구체적인 피해 배상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주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쿠팡이 입점 판매자들의 재고 손실에 대해서는 전액 보상 방침을 발 빠르게 발표한 것과 달리, 정작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보상에는 적극적이면서 시민들의 생존권과 건강권이 걸린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서해구 관계자는 과거 2021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당시의 보상 선례를 검토하며 쿠팡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쿠팡은 인근 가구에 진료비와 건강검진비를 지원하고 잿가루 피해 농작물을 매수하는 등 포괄적인 보상을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인천 화재는 주거 밀집 지역에서 발생해 피해 범위가 훨씬 넓고 학교와 어린이집 휴원 사태까지 불러온 만큼, 과거보다 훨씬 큰 규모의 보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 사회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재 서해구 안전총괄과는 피해 접수 창구를 운영하며 보상 범위와 방식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합의안이 도출되기 전까지 주민들은 대피소 텐트 안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야 하는 처지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잿더미만큼이나 주민들의 마음속에 쌓인 불신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와 당국의 신속한 행정력이 결합된 실질적인 구제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문화포털

낯선 존재와의 유대, 피치니니의 킨쉽

 수원시립미술관이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이며 2026년 하반기 미술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수원 팔달구 행궁 본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국제전 '킨쉽(Kinship)'은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갖는 개인전이자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조각부터 영상,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20여 년간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 56점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이번 전시의 핵심 키워드인 '킨쉽'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맺는 유대와 책임을 의미한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자연이 얽히는 기묘하고도 따뜻한 풍경을 그려낸다. 피치니니는 실리콘과 머리카락 등을 활용해 실제 생명체처럼 보이는 극사실주의 조각을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후 그녀는 생명공학 시대의 돌봄과 공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도입부인 1부 '깨어나다'에서는 사물과 신체가 결합한 독특한 형상들을 통해 기술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다. 특히 알을 품은 인물을 형상화한 작품은 생명을 보호하고 길러내는 돌봄의 숭고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이어지는 2부 '조우하다'는 인간이 낯선 생명체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의 긴장과 호기심을 다룬다. 일상적인 공간 속에 상상의 생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사진 연작들은 관람객들에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3부 '유대하다'는 이번 전시의 주제 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간이다. 인간과 영장류의 특징이 혼합된 존재나 생명공학으로 탄생한 듯한 가상의 가족 형상을 통해 우리가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작가는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생명체들에게 모성애와 의존성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혐오 대신 연민과 사랑의 시선을 유도한다.전시의 마지막인 4부 '흔적들'은 작가의 작업 과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다. 인터뷰 영상과 기록물을 통해 작품 이면의 철학을 공유하며, 특히 34m 높이의 초대형 열기구 프로젝트 기록은 공공미술로서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웅장하게 보여준다. 전시 기간 중에는 SF 전문가의 강연과 작가 토크, 재즈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관람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예정이다.수원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급변하는 기술 사회 속에서 우리가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의 정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전시는 유료로 운영되지만 매주 수요일은 시민들을 위해 무료 개방을 시행한다. 관람 시간은 계절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므로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세계적 거장의 파격적인 상상력이 담긴 이번 전시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묻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