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영화의 만남, 그리스 '오디세이 루트' 뜬다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빚어낸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가 스크린을 넘어 그리스 관광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인류사적 관심이 증폭되자, 그리스 정부와 지자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화 촬영지와 신화 속 유적을 결합한 대규모 여행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한 유적 관람을 넘어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실체를 잇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관광이 예고된 셈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펠로폰네소스주다. 현지 당국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무대와 실제 촬영지를 잇는 '오디세이 루트-호메로스의 펠로폰네소스'라는 테마 여행 코스를 설계 중이다. 관광객들이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고대 성곽과 해변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용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안내 표지판을 정비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정식 루트 공개를 목표로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중앙정부 역시 이번 영화가 가져온 파급 효과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놀런 감독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번 작품이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현대의 창의적 영상미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영화 촬영 허가와 제작 지원이 실질적인 국가 홍보와 관광 수입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인한 만큼, 향후 해외 제작사 유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실제로 영화 촬영지로 활용된 네스토르 동굴과 보이도킬리아 해변, 메토니성 등은 개봉 이후 방문객이 급증하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 당국은 단순히 촬영지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리스와 헬레네의 전승이 깃든 크라나에섬이나 제우스의 신화가 남아 있는 페프노스섬 등 인근의 숨겨진 유적지까지 코스에 포함해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역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유럽 현지 여행 업계의 지표도 이러한 열풍을 뒷받침한다. 주요 여행사들의 예약 데이터에 따르면 그리스 본토와 주요 섬 휴양지의 예약 건수는 영화 개봉 이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의 관문인 칼라마타 지역의 검색량과 코르푸 패키지 예약률이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놀런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에서는 영화 개봉 전부터 관련 특집 기사가 발간되는 등 그리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다만 이러한 단기적인 흥행이 지속적인 문화 향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영화로 촉발된 호기심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유적지의 전시 방식을 현대화하고 고전학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화가 쏘아 올린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장기적인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연결하는 것이 그리스 정부가 마주한 다음 과제다.

 

문화포털

바람과 빛이 만든 전시, 사공누리 개인전 개막

 대구 동구의 하늘과 맞닿은 새로운 예술 공간이 문을 열었다. 루지움갤러리는 도심 속 야외 전시 공간인 '루지움 스카이 테라스(LUZIUM SKY TERRACE)'를 전격 공개하며, 개관 기념 첫 전시로 사공누리 작가의 개인전 'In situ: 머무름의 조건'을 27일부터 나흘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닫힌 실내 공간을 벗어나 변화무쌍한 외부 환경과 예술 작품이 실시간으로 교감하는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첫 주자로 나선 사공누리는 노르웨이의 거친 자연과 한국의 정제된 공간 미학을 결합해온 설치 미술가다. 작가는 그동안 섬유, 도자, 종이 등 이질적인 재료들을 활용해 물질 간의 균형과 지탱,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금속과 실, 원단을 주재료로 삼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구조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촉각적 감각을 자극한다.전시의 핵심은 작품이 놓인 위치와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심 풍경의 조화에 있다. 작가는 조형물들을 테라스 곳곳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하여,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아파트 단지, 빽빽한 빌딩 숲, 혹은 탁 트인 하늘을 마주하게 설계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작품이 마주하는 배경이 달라짐에 따라 관람객은 '머무름'이라는 행위가 장소와 관계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야외 전시장이라는 특수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인위적인 조명이 아닌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의 궤적, 그리고 테라스를 타고 흐르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품의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가 된다. 이는 기존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전시 환경을 구축한다.루지움갤러리 관계자는 예술이 박제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순간을 강조했다. 도심 주택가와 상업 지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카이 테라스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최적의 장소로 기능한다. 관람객들은 익숙한 도시의 풍경 속에 낯설게 놓인 예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일상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사공누리 작가의 이번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짧지만 강렬하게 이어지며 대구 시민들에게 특별한 휴식을 제공한다. 도심의 소음과 하늘의 정적이 공존하는 야외 테라스에서 펼쳐지는 설치 미술의 향연은 지역 문화 지형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작가가 던진 '머무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도심 속 예술 공간의 의미와 함께 관람객들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