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어 '꽃길 걷는' 시니어 모델들의 '패션' 반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패션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패션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시니어 모델들이 패션 업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케이플러스 소속 시니어 모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시니어 모델 시장의 급성장은 글로벌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와 함께 중장년층의 구매력이 상승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같은 연령대 모델들이 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와 공감대 형성은 시니어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구매 동기를 제공한다.

 

지난 14일 강남 모나코스페이스에서 열린 이용범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시니어 모델들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무대였다. 정교한 테일러링과 현대적 럭셔리를 접목한 이번 컬렉션에서 시니어 모델들은 젊은 모델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프로페셔널리즘을 선보였다.

 

특히 주목받은 박지영은 베이지톤 수트와 짧은 컷트 머리, 스모키 메이크업의 완벽한 조화로 런웨이를 장악했다. 최근 2025 FW 서울패션위크에서도 맹활약한 그는 Z세대 모델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니어 모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글로벌 무대를 누비는 이수진의 활약도 눈부시다. 화이트 수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프로페셔널한 워킹을 선보인 그는, 상해와 대련 패션위크 참가 경력까지 보유한 글로벌 시니어 모델이다. 그의 성공은 나이를 초월한 재능과 열정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JTBC '끝사랑'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우형준은 이번 무대에서 브라운 코트 차림으로 등장해 자연스러운 포징과 워킹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전직 대기업 건설사 임원 출신인 박윤섭은 트레이드마크인 풍성한 수염과 블랙 수트의 조화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SBS 슈퍼모델 더그레이스 본선 진출자 안성엽은 도전적인 핑크 수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니어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니어 모델이라는 직업이 지속 가능한 커리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패션계의 다양성 추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시니어 모델들은 젊은 모델들이 표현하기 힘든 깊이 있는 감성과 인생 경험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패션 산업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나이를 뛰어넘는 도전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포털

한일 미술 80년, '친선' 너머의 긴장과 균열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이 걸어온 지난 80년은 단순한 문화 교류라는 단어로 담아내기에 그 층위가 매우 복잡하고 다단하다. 해방과 패전, 냉전의 대립과 국교정상화라는 거대한 역사의 파고 속에서 양국의 예술가들은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자신들만의 미학적 지도를 그려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번 기획전은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양국 미술의 궤적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재구성하여 관객들에게 선보인다.전시의 서막은 광복 이후에도 일본 땅에 남아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조양규와 곽인식 등은 척박한 현실과 분단의 아픔을 사실적인 묘사와 전위적인 추상 실험으로 풀어내며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작품에 투영했다. 이들의 작업은 일본 미술계의 일원이면서도 동시에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위치를 보여준다. 이는 한일 미술사가 서울과 도쿄라는 중심지 너머의 소외된 목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킨다.1960년대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매개로 양국의 전위예술이 뜨겁게 교차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한 백남준은 서구권을 무대로 활동하면서도 일본의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기존 예술의 권위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피아노를 파괴하거나 위성을 이용해 대륙 간의 장벽을 허무는 시도들은 냉전 시대의 기술 문명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들로 남았다.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에는 미술 교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박서보와 유영국 등 한국의 추상미술 거장들이 일본에 소개되었고, 반대로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한국 미술계와 접점을 넓히며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았다. 특히 대구현대미술제와 같은 지역 기반의 활동은 국가 주도의 공식적인 교류를 넘어 작가 개개인의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양국 미술의 저변을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젊은 작가들은 제도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훨씬 자유롭고 감각적인 소통을 시작했다. 나카무라 마사토와 이불 등 당시의 신진 작가들은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동시대의 고민을 공유했고, 이는 사이보그 연작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신체 담론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의 교류는 역사적 부채감보다는 기술 문명과 현대 사회의 욕망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양국 예술가들이 동등한 파트너로서 마주했음을 보여준다.전시의 대미는 2000년대 이후 재난과 혐오라는 공동의 과제에 직면한 예술가들의 연대로 장식된다. 관동대지진의 비극이나 동일본 대지진의 상실감을 다룬 작품들은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예술의 윤리적 태도를 묻는다. 예술가들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혐오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43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일 미술이 지나온 길 위의 균열과 긴장까지도 예술적 자산으로 승화시키며 9월 말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