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숙청당하고 돌아와 중국 4100년의 굶주림을 끝낸 지도자

 1978년, 중국의 1인당 소득은 156달러에 불과한 절대 빈곤 국가였다. 그러나 4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 경이로운 '대굴기(大崛起)'의 중심에는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있었다. 그는 국가 주석이나 총리 같은 공식적인 최고 직책 없이, 오직 실용주의 리더십 하나로 중국 대륙을 천지개벽시켰다.

 

덩샤오핑의 정치 인생은 그야말로 '삼전삼기(三顚三起)', 즉 세 번의 실각과 세 번의 복권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마오쩌둥의 급진적인 정책에 반대하다 '우경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혔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자본주의 길을 걷는 실권파'로 몰려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공장으로 하방되는 수모를 겪었다. 평생의 정치적 동지였던 저우언라이의 사망 이후에는 '반당·반사회주의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세 번째 시련을 맞았다.

 

그러나 157cm의 작은 체구에 담긴 그의 정치적 생명력은 끈질겼다. 1977년, 73세의 나이로 세 번째 복권에 성공한 그는 1년 뒤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는 승부수를 던진다. 1978년 12월, 그는 '4개 현대화' 노선을 발표하며 개혁·개방 정책의 서막을 열었다. 그의 철학은 명료했다. "고양이 색이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실용주의였다. 이념 논쟁으로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인민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이었다.

 

개혁은 농촌에서부터 시작됐다. 집단농장인 인민공사를 과감히 해체하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가정연산승포책임제'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는 사실상 토지를 가족 단위로 나누어 경작하고, 남는 생산물은 시장에 팔 수 있게 한 조치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1979년 시범 마을의 식량 생산량은 6배나 폭증했고, 1984년에는 중국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가 해결됐다. 10억 인민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역사상 최초의 지도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농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그는 선전, 주하이 등 4개의 '경제특구'를 설치해 자본주의 실험에 착수했다. 외국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규제를 철폐하자, 인구 3만의 작은 어촌이었던 선전은 불과 10여 년 만에 100만 인구의 현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와 1991년 소련 붕괴로 개혁·개방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88세의 노정객은 다시 한번 직접 나섰다. 1992년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보수파의 저항을 잠재우고 중국 경제가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내세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구호다. 필자의 지적처럼, 이는 '네모난 원'과 같은 형용모순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라는 금기어를 피하고 만들어낸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본질은 사유재산과 경쟁을 도입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였다. 덩샤오핑은 공산주의라는 껍데기는 유지하되, 그 안의 내용물은 자본주의로 채워 부유하고 강력한 중국을 만드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 위대한 속임수야말로 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일지도 모른다.

 

문화포털

한국 10대 '패드립' 배울 때…핀란드에선 중2가 초4에게 '이것' 가르친다

 한국의 10대들이 온라인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마주하는 것은 '패드립(가족을 향한 욕설)', '성희롱', '장애인 혐오'와 같은 여과되지 않은 폭력이다. 익명의 공간에서 중고등학생 형들에게 배우는 것이라고는 세상을 향한 냉소와 혐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차별과 혐오가 깊숙이 파고들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극우적 신념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 줄 안전장치,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이러한 현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핀란드의 교실을 들여다보자. 그곳에서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핀란드의 한 종합학교, 우리나라의 중학교 1, 2학년에 해당하는 7, 8학년 학생들은 1교시부터 '온라인 괴롭힘은 왜 생기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들은 조별 토론을 통해 "처벌과 모니터링 부족", "익명성의 악용" 등 놀랍도록 분석적인 답을 스스로 찾아낸다.핀란드 교육의 진짜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수업의 핵심은 바로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것'에 있다. 중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이 내용을 어떻게 초등학교 4학년 후배들에게 가르칠지 구체적인 교수법까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이는 '지원 학생(Tukioppilas)'이라 불리는 핀란드 특유의 멘토링 교육 시스템이다. 50년 넘게 발전해 온 이 교수법은 선배가 멘토가 되어 후배를 직접 가르치는 방식이다. 선배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내용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후배들은 딱딱한 교사의 설명보다 눈높이에 맞는 선배의 말을 훨씬 효과적으로 받아들인다.실제로 두 시간 뒤,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는 훨씬 더 활기찬 수업이 진행된다. "어제 게임 한 사람, 제자리 뛰기!"와 같은 놀이로 시작해 아이들의 흥미를 끈 뒤, "안전하게 미디어를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앞서 수업을 들었던 중학생 멘토들이 각 조에 투입되어 후배들의 토론을 돕는다. 단어 뜻을 설명해주고, 추가 질문으로 생각을 이끌어내는 선배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후배들은 선생님의 말보다 선배의 말을 더 경청하며 미디어 세상의 규칙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핀란드 교육자들은 10살(초4)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막 미디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라 교육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영향력"과 같이 어려운 개념은 "사탕 꾸러미에서 좋아하는 맛 하나를 꺼냈더니 다른 사탕도 그 맛으로 변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비유로 설명한다. 이 조기 교육 덕분에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보낸 링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이 모든 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교사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핀란드 교사들은 대부분 석사 학위 소지자로, 사회적 존중과 신뢰가 두텁다. 덕분에 교사들은 전쟁 관련 가짜뉴스 같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이 접하는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것을 '교사의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혐오와 가짜뉴스에 아이들이 물들지 않도록 국가와 학교, 가정이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핀란드 미디어 교육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