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열, 폐자재에 숨 불어넣은 생명 미술

 강원도 원주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형상미술의 길을 걸어온 김진열 작가가 자신의 40년 예술 여정을 집대성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회고전은 작가가 오랜 시간 관찰해온 평범한 이웃들의 생명력을 284점의 신작으로 풀어낸 대규모 전시다. 작가는 화려한 수식이나 극적인 연출 대신, 우리 곁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시민들의 뒷모습과 몸짓에 집중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가치를 탐구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화려한 주인공이 아닌, 세상을 지탱하는 이름 없는 조연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김진열 작가의 인물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인물들의 구체적인 표정이 지워져 있다는 점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짓이겨진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관람객의 시선은 인물의 전체적인 실루엣과 태도로 확장된다. 구부정한 어깨와 거친 손마디, 힘겹게 내딛는 발걸음 등 몸 전체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수만 가지 표정보다 더 깊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한 인간이 감내해온 세월의 무게와 그 안에 깃든 존엄성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된 장치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이들은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거나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다. 작가는 정치적 권력자나 유명 인사가 아닌,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의 형상을 발견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이라는 믿음은 그의 붓끝을 통해 캔버스 위에 생생하게 구현된다. 이러한 시선은 특정 개인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초상을 완성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인물화와 더불어 작가의 고향인 동해 바다를 상징하는 수평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옥계 바다에서 보았던 끝없는 수평선은 작가에게 영원한 안식처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바다를 찾듯,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수평선을 배치함으로써 관람객들을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인물들의 배경으로 자리 잡은 푸른 선들은 고단한 삶의 현장조차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암시하며 묘한 위안을 선사한다.

 


설치 미술 분야에서도 작가의 생명 사상은 빛을 발한다. 전남 여수의 연도에서 수집한 녹슨 철판과 버려진 폐자재들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난다. 부식된 금속의 질감에서 인간의 피부와 나무의 나이테를 발견한 작가는, 폐기물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부활과 재창조의 의미를 역설한다. 종이를 겹겹이 쌓아 나무의 형상을 만든 작품들 역시 죽어 있는 재료에 예술적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집요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는 버려진 것들조차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김진열의 작품 세계는 원주의 정신적 지주였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생명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 인간과 자연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다. 전시장 입구부터 출구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몸짓은 결국 생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번 회고전을 통해 예술이 박물관에 갇힌 박제가 아니라, 길거리 이웃들의 숨결 속에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실체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문화포털

"연차 쓰고 광화문으로"…체코전 응원 열기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서막을 알리는 대한민국과 체코의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 서울 도심 곳곳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는 경기 시작 수 시간 전부터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모여들어 뜨거운 응원전을 준비했다. 대한축구협회와 공식 파트너사들이 마련한 대형 미디어월 주변으로는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선점하려는 축구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주최 측은 이날 광화문에만 약 6,000여 명의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며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평일 오전 11시라는 경기 시간표는 직장인들의 응원 풍경을 새롭게 바꿨다. 많은 시민이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소중한 연차 휴가를 사용하며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2002년의 감동을 기억하는 3040 세대부터 체험학습 보고서를 제출하고 부모님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까지, 세대를 초월한 응원 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일부 시민들은 돗자리와 간이의자는 물론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선풍기와 부채까지 준비해 장기전에 대비하는 철저함을 보이기도 했다.응원 현장에는 순수한 축구팬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젊은 층도 상당수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다. 축하 공연에 나선 아이돌 그룹 ‘코르티스’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 팬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해외 유학생들도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 응원에 동참하며 월드컵이 가진 글로벌 축제로서의 면모를 실감케 했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 기동대와 소방 인력은 인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안전 통제에 주력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직장인들이 밀집한 여의도 금융가 역시 월드컵 열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마당에 설치된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 주변으로는 점심시간 전부터 응원 도구를 챙겨 든 직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업 측에서 마련한 체험 공간과 포토존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동료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현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응원봉을 두드리며 아이들과 함께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강남 코엑스몰 등 실내 공간에서도 차분하지만 뜨거운 응원전이 펼쳐졌다. 라이브플라자에 설치된 전광판 앞에는 수업이 없는 대학생들과 휴가를 낸 직장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으로 급한 업무나 과제를 처리하면서도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평일 오전 응원전만이 가진 독특한 풍경이었다. 혼자 현장을 찾은 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계 화면이 바뀔 때마다 터져 나오는 탄성과 환호는 광장에 모인 이들을 하나의 응원단으로 묶어주기에 충분했다.오전 9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응원 행사가 시작되자 서울 도심은 "대~한민국" 구호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경찰 집계 결과 본무대 구역에만 수백 명의 인원이 입장 제한선까지 가득 찼으며, 주변 공간으로 밀려난 시민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스크린을 주시하며 결전의 순간을 기다렸다. 대표팀의 팀워크를 믿는다는 팬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승리를 향한 염원은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을 잇는 보랏빛과 붉은빛의 함성으로 승화되어 북중미 현지로 향하는 응원의 기운을 완성했다.